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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의 데이트 두번째 이야기~

피스블리 2017. 8. 19. 11:26

오늘아침 마음이 설렘설렘
어젯밤 영화보러 같이 가자는 아들
우왕 만세 !!!
엄마,영화 보고 싶은것 있어라고 물어보는 ㅎㅎ
몇달만의 데이트인지ㅋㅋ 당근당근 있지
택시운전사 보고 싶다는 말에 아들도 격한 동감을...
아들은 콜라,난 환타를 들고 영화관입장
영화의 사건은 여기서부터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은 외국손님을 태우고 광주에 갔다
통금(통행금지 시간이 있었나 봄)전에 돌아오면 10만원을 준다는 말에
독일기자피터(토마스 크레취만)을 태우고 영문도 모른체 길을 나서는
만섭은 예전 사우디아라비아에 일하러 갔던 적이 있어 영어를 천천히 하면
해석하고 대화정도는 될수 있는 실력(그 당시 우리나라 국민들이 광부,간호사등으로 외국으로 
많이 일하러 갔었던 시절)
광주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고,사람들이 살수 없는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영화 <택시운전사> 의 배경은 1980년도 광주에요. 
1979년 10월, 박정희가 김재규에게 암살당하고 전두환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대한민국은 큰 혼란으로 접어듭니다.

전두환은 비상 계엄령을 선포하고, 언론을 통제하는 등 다시 군사통치 시대로 돌아가려는 움직임
이에 박정희가 죽고 새 시대가 열리기를 기대했던 국민들은 실망을 금치 못했지요.
전국적으로 민주항쟁운동이 확산되었어요.

1980년 5월 15일, 10만명의 대학생들이 서울역 광장까지 행진 (서울의 봄) 하며 계엄령 철폐,
군사독재 반대 및 조속히 민주화 일정을 밝힐 것을 외칩니다.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는 이를 기회로 삼아 비상계엄령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기로 의결해요. 

전라도는 예로부터 경상도와 지역감정이 심했지요. 
군사독재 전두환은 경상남도 합천 출신이고, 민주정치 김대중은 전라남도 신안 출신이니,
당시 신군부의 입장에서 전라도는 눈엣가시였을 거에요.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가 세력을 장악하면서,
전라도의 민심은 흉흉해집니다. 김영삼 같은 영남정치인이 가택연금을 당하고 김대중이 구속되면서,
광주 전남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김대중 석방 요구 시위가 벌어져요.  그리하여 5월 18일,
계엄군은 전라남도 광주를 장악하고 학생들의 등교를 통제합니다. 이에 맞서 18일부터 28일까지,
광주시민들은 중무장한 계엄군과 싸웁니다. 


계엄군은 광주로 통하는 모든 길을 막고, 철저히 사건을 은폐하려 해요.

국민들을 지켜야 할 군대가, 비무장 시민들을 학살합니다.
5월 27에는 2만 5천명의 군병력이 투입되었다고 해요....

총 350여명의 시민들이 학살당하고, 10여명의 계엄군이 사망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전남도청 발포 당시 상황

광주 바깥의 사람들은 광주에서 일어난 학살을 전혀 몰랐다고 해요. 

기자들은 신군부가 두려워 기사를 내지 못하고, 
방송국도 신군부의 입맛에 맞는 뉴스만을 방송했어요.
독일의 힌츠펜터가 취재를 위해 방문하자, 광주 사람들은 환호합니다. 

군인의 통제 때문에, 당시엔 광주에 발을 들이기조차 힘들었다고 해요. 
영화 <택시운전사>는 그 고된 여정을 담고 있어요.

영화 보는 내내 얼마나 울었는지 눈물이 계속 흘러,
왜 이렇게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총칼을 겨누고 싸워야 했을까?

저 젊은 청춘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서 목숨도 아끼지 않고 죽어가고 있는 것일까?
사실 더 믿기지 않는것은 광주에서 전쟁아닌

전쟁을 하고 있을때에 옆 마을에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외국기자가 우리 나라의 사정을 알리기 위해서 일본에서 날라와서

목숨걸고 사건을 취재하지 않았다면 그냥 묻혀버리고 말았을 역사의 한페이지.
나는 아직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다.뉴스나 영화를 통해서 아니면 엄마를를 통해서,
엄마가 사는곳은 안전해서 전쟁의 피해가 없었다한다.

문득 아들과 수영만 요트경기장에 갔을때 들었던
"We are one" 지구촌 전쟁종식과 " Peace"
를 외쳤던 HWPL 을 떠 올리게 되었다.

이만희 (HWPL) 대표는 그렇게 "지구촌 전쟁종식"을 외치는지 궁금증이 생겼다.
해답발견 19세에 6.25전쟁에 참전함, 그것도 최전방에서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눈앞에서 비참하게 죽어 가는지 직접 목격하고 당사자이기도 한
그래서 더 절실할수 밖에 없었고 직접 뛰지 않을수 없었음을 비로소 이해 하게 되었다.
같은 땅에 같은 사람으로 태어난 청년이 왜 꽃 한번 피워보지 못하고 죽어야하는가?
전쟁종식,세계평화의 필요성과 구체적인 현실을 담은

세계평화 광복 선언문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평화의 일에 동참하고 있다고 한다.



아들 둘을 가진 엄마로서 먼저 대표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전쟁이 일어나면 당연히 젊은 청년들이 먼저 희생자가 되어야 하는데...




세계 다른나라 엄마들 마음도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더이상 전쟁으로 인한 희생자가
생기질 않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각국의 청년들도 HWPL(이만희)대표의 평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을 것이다.





아들과의 데이트는 오늘도 멋지게 끝냈다.
세계평화,하면되고,우리모두 한마음으로 힘을 합치면 안되는 것이 없을것이다.
지금도 세계평화를 위해 뛰고 있는 HWPL 홧팅!!!